[칼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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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회
  • 한국공정일보
  • 승인 2020.07.29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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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불통의 사회는 독재사회

공자사상의 핵심어가 ‘사랑(愛’)을 뜻하는 ‘인(仁)’임은 잘 알려져 있다. ‘인’을 주로 다룬 ‘논어’ 제4권 ‘이인’편에 증오(惡)라는 단어가 유난히 자주 등장한다. 쉽게 말해 사랑을 격려해도 시원치 않을텐데, 나쁜 것을 철저하게 미워하는 것이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논어가 제시하는 ‘인’을 실현하는 방법 중 악을 미워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 오히려 쉽다.
 
제자 자공(子貢)이 공자께 여쭈었다.
“선생님도 미워하는 것이 있습니까?”
공자(孔子)가 대답했다.
“있지”
자공이 물었다.
‘무엇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남의 잘못을 떠벌리는 것, 낮은데 있으면서 윗사람 헐뜯는 것, 용맹스럽기만 하고 무례한 것, 과감하기만 하고 꽉 막힌 것을 미워하네”
다시 공자가 자공에게 물었다.
“자네도 미워하는 것이 있는가?”
자공이 답했다.
“주워들은 걸로 자기 지식인양 여기는 깃, 불손함을 용기로 하는 짓, 고자질을 정직으로 여기는 것을 미워합니다.”(논어, 17:24)
 
공자는 사사로운 감정에서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조직에서의 잘못을 지적하는 ‘공분’에 가깝다. 특히 과감하기만 하고 꽉 막힌 것을 미워한다는 지적은 깊이 탐구해 볼 만하다. ‘과감하다’라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전부로 생각하고 마구 행동하는 ‘짓’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성찰하지 않는 인간, 귀를 막은 인간의 행태를 춘추 시대의 질병으로 진단한 것이다.
 
‘꽉 막혔다’는 것은 일종의 소통이 없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권력을 손에 가진 자가 ‘꽉 막힌’ 불통(不通)이 되면 국민은 양분(兩分)하게 된다.
 
권력자에게 잘 보여 자신의 안위와 만족을 위해 아첨하는 자와 소통을 요구하고 잘못을 지적하는 자. 이도 저도 아니면 관심 두지 않고 떠나는 자만 남게 된다.
 
또한 자공이 미워한 ‘주워들은 걸로 자기 지식인양 여기는 짓’이라는 것은 정독(精讀)하지 않고 올바르게 알지 않는 것. 다시 말해 어설프게 듣거나 자기 입맛에 맞는 정보에만 귀를 열고 얕은 지식으로 세상을 다 아는 듯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무식의 극치(極致)다.
 
우리 사회에도 이런 자들이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해 국민을 ‘혹세무민’(惑世誣民)하거나 선동하는 자들이다. 이들의 특징은 쉴새없이 얘기하고 여기저기 참견하기 좋아한다. 문제는 그런 자들을 국민이 영웅시 하거나 높이 사고, 지식인이라든지 선각자(先覺者)처럼 대하는 경우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식(無識)의 극치(極致)다. 일제강점기 시대였다면 일본에 빌붙어 소위 안장차고 순사(巡査) 노릇했을 자들이다.
 
우리 사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인(仁)을 가르치고 잘못을 미워하는 지극히 평범한 것을 가르치는게 필요하다. 상식(常識)이 통해야 일반 정서를 갖고 있는 국민들이 편하게 살 수 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시대는 '불통의 시대'고 '독재정권'의 시대다.
 
기본적인 상식이란 일반적인 국민들이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고, 나라가 튼튼하고 안정돼야 해외에 나가서도 인정받을 수 있고, 기업이 잘되고 회사가 잘 되야 월급을 가져갈 수 있고, 내 돈으로 먹고 싶은 것 먹고, 입고 싶은 것 입고, 사고 싶은 것 사는 것. 뿐이랴.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좋은 대학 가는 것, 모두가 성공할 순 없어도 누구나 열심히 하면 열심히 일한 만큰 인정받고 성공하는 것, 이런 기본이 이해되고 사회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권력에 빌붙어 곡학아세(曲學阿世)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이들이 너무 많다. 부끄러운 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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